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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 성씨
2018-04-24
조상의 시조는 후거였다. 명나라 시대에 서씨 가문의 최초 조상들은 핑양부 홍퉁현과 자오청현에 호적을 올렸다. 명나라 초기에는 조정의 칙명에 따라 홍퉁의 큰 느티나무 아래로 모여들어 각지로 이주하였다. 청나라 말기에 이르러 그 후손들은 허난성, 산둥성, 허베이성, 베이징, 톈진, 산시성, 간쑤성, 안후이성, 장쑤성, 후베이성, 후난성, 산시성 등 여러 지역으로 널리 퍼졌다. 서씨 성씨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남송 시대의 저작인 「흥원」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성씨의 유래] 이 성씨는 지명에서 유래하였다. 「만성대보」에 따르면, 춘추시대에 진나라의 대신인 호거가 서(徐) 봉지에 봉해져서 서간공으로 불리게 되었다. 서 봉지의 옛 터는 오늘날의 산서성 일대에 위치하며, 그의 후손들이 서를 성씨로 삼았다.
[성씨의 유래] 서씨의 주요 시조 출신지는 하동군, 상양군, 그리고 연문군이다. 하동군은 진나라 초기에 설치되었으며, 오늘날 산시성의 하현 북서부와 용지현 서쪽의 포주진 일대를 포함하였다.
[주목할 만한 인물들] ‘중국 성씨대사전’에는 서씨 성을 가진 인물이 여섯 명 기록되어 있으며, ‘중국 역대 성씨대사전’에는 다섯 명이 수록되어 있다. 역사상 서씨를 지닌 인물로는 춘추시대에 진나라의 서간백과 법부대신을 지낸 서현이 있었고, 한나라에는 서향여가 있었으며, 원나라에는 상령 출신으로 국자감 사업을 지낸 서지중이 있었고, 명나라에는 린펀 출신의 효자 서봉이 있었다.
[인구] 제4차 전국 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산시성에는 서씨 성을 가진 사람이 14,149명으로 집계되었으며, 그중 린펀시에 3,483명, 홍둥현에 481명이 거주하고 있다.
[제단장] 대회화나무 아래에 자리한 사당의 제3호 제단장에는 서씨 문중의 조상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키워드:
홍통 큰 회화나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