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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씨 성씨
2018-06-28
조상으로 삼는 시조는 염제와 신제이다. 명나라 때, 본래 평양부 홍동현과 조성현에 호적을 두고 있던 심씨의 선조들은 왕조 초기에 홍동의 큰 느티나무로 집결하여 타 지역으로 이주할 것을 명받았다. 청나라 말기에 이르러 그 후손들은 허난성과 산서성 등지로 널리 퍼졌다. 심씨 성이 처음으로 기록된 사례는 동한 시대의 문헌인 「풍속통·성씨편」에 나타난다.
[성씨의 유래] 이 성씨에는 크게 두 가지 유래가 있다. ① 신농의 후손에서 비롯되었다. ‘풍속통’의 ‘성씨편’에 따르면, 고대 제왕 신농의 후손 가운데 염제가 있었는데, 그 중 일부가 신농의 ‘신’ 자를 성으로 삼았다. ② 심황지의 후손에서 유래하였다. 역시 ‘풍속통’의 같은 편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고대 황제 시대에 심황지라는 대신이 있었고, 그는 리무 등과 함께 치우를 토벌하는 원정을 지휘하였으며, 심황지의 후손들 가운데 일부가 그의 이름에서 ‘신’ 자를 취하여 성으로 삼았다. [문중의 본관] 신씨와 관련된 주요 문중의 본관은 낭야군이다. 낭야군은 진나라 시조인 진시황에 의해 설치되었으며, 오늘날 산둥성 동남부의 주청 일대에 해당한다.
[주요 인물] ‘중국 성명대사전’에는 심씨 성을 가진 인물이 두 명 기록되어 있으며, ‘중국역대성명대사전’에는 열다섯 명이 수록되어 있다. 역사상 심씨 성을 지닌 인물로는 한나라 시대의 기병대장 심요가 있고, 명나라 시대에는 연수 출신으로 농민봉기의 지도자였던 심원과, 수주 출신으로 연안 주둔군 사령관 직을 세습한 부자인 심영과 심주가 있다.
[인구] 제4차 전국 인구조사에 따르면, 산시성에는 성씨가 ‘심’인 사람이 여섯 명 거주하고 있다.
[제단장] 대회화나무 아래에 자리한 사당의 제3호 제단장에는 신위들이 봉안되어 있다.
키워드:
홍통 큰 회화나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