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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성씨

2018-08-23


조상으로 알려진 시조는 진지본이다. 명나라 시대에는 평양부, 홍동현, 조성현 등지에서 유래한 진씨 일족이 홍동의 큰 느티나무 아래에서 황제의 칙명에 따라 대거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청나라 말기에 이르러 그 후손들은 허난, 산둥, 허베이, 베이징, 안후이, 장쑤, 산시 등 여러 지방으로 널리 퍼졌다. 진 성씨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남송 시대에 편찬된 ‘흥원’에 나타난다. [성씨의 유래] 이 성씨의 근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① 부족의 이름을 가문의 성으로 삼은 데서 유래한다. 왕신의 ‘위서’에 따르면, 동한 시대 오환 부족 가운데 신이라는 성을 가진 일족이 있었고, 그 중 한 사람인 신지본은 한나라 때 유양의 오환 수령으로 활약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후손들은 한족 문화에 동화되었고, ‘신’과 ‘진’의 발음이 유사했기 때문에 결국 그들의 후손들은 ‘신’이라는 부족명을 성으로 채택하게 되었다.

조상으로는 친지본이 있다. 명나라 시대에 평양부, 홍동현, 조성현 등지에서 유래한 친씨 일족은 황제의 칙명에 따라 대규모로 타 지역으로 이주하였으며, 그 집결지는 홍동의 큰 느티나무였다. 청나라 말기에 이르러 그 후손들은 허난성, 산둥성, 허베이성, 베이징, 안후이성, 장쑤성, 산시성 등 여러 지역으로 널리 퍼졌다. 친 성씨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남송 시대에 편찬된 성씨 총람인 「흥원」에 나타난다.

[성씨의 유래] 이 성씨에는 크게 두 가지 유래가 있다. ① 부족명을 성으로 삼은 데서 비롯되었다. 왕신의 「위지」에 따르면, 동한 시대에 오환족 가운데 신(辛)이라는 성을 가진 일족이 있었고, 그 구성원 중 한 사람인 신지본은 한나라 조정 아래에서 우양의 오환 수령으로 활동하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후손들은 점차 한화되어 갔는데, ‘신’과 ‘친’이 발음이 같았기 때문에 후손들이 친(秦)이라는 성을 취하다가, 이후 발음의 유사성으로 인해 다시 신으로 바꾸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② 또한 지명을 성으로 삼은 데서 유래하기도 한다. 「위지」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진주(秦州) 지역의 일부 주민들이 진주를 성으로 삼았다고 한다. [문중의 본관] 친(秦) 성과 관련된 주요 본관 지역으로는 하간군, 무흥군, 신안군, 금운 등이 꼽힌다. 하간군: 원래 전국시대에 조나라의 영토였던 곳으로, 한 고조 초기(기원전 206년)에 군으로 설치되었다. 그 이름은 황하와 용정하 사이에 위치한 데서 유래하며, 오늘날 허베이성 중부의 하간현에 해당한다.

[대문 현판] 진씨 가문의 대문 현판은 다음과 같다: “우녕, 어진 목민관”(진공); “수연 노인”(진덕재); “의로운 재가자 진”(진산); “수연 노인”(진덕재).

[주목할 만한 인물들] ‘중국 성씨대사전’에는 진씨 성을 가진 인물이 네 명 기록되어 있으며, ‘중국 역대 성씨대사전’에는 다섯 명이 수록되어 있다. 역사상 진씨 성을 지닌 인물로는 남북조 시대에 유양 오환의 저명한 지도자였던 진지본, 송나라 시대에는 무현 출신으로 송 말기에 병마절도사의 참모로 활동한 진덕재, 그리고 진명 등이 있다. 명나라 시대에는 내의원 의관이었던 진천이 있었고, 청나라 시대에는 장쑤성 화정 출신의 시인 진산이 있었다.

[인구] 제4차 전국 인구조사에 따르면 산시성에는 진씨 성을 가진 사람이 50명 있으며, 그중 린펀시에 1명이 거주하고 있다.

[제단장] 진씨 일족의 위패는 큰 느티나무 아래에 자리한 사당의 제4호 제단장에 봉안되어 있다.

키워드:

홍통 큰 회화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