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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 성씨

2018-09-07


성씨는 미씨(米氏)에서 유래하며, 시조는 좍화(卓華)이다. 현대 중국 성씨 가운데 256위에 해당한다. 명나라 시대에 홍통의 대회수(大槐樹)로부터 이주한 좍씨의 선조들은 본래 홍통현 평양부와 조성현에 호적을 두고 있었다. 명나라 초기에는 홍통의 대회수로 집결하여 타 지역으로 이주하도록 지시받았다. 청나라 말기에 이르러 그 후손들은 허난성, 산둥성, 허베이성, 베이징, 톈진, 산시성, 간쑤성, 안후이성, 장쑤성, 후베이성, 후난성, 랴오닝성, 헤이룽장성, 산시성 등지로 널리 분포하였다. 좍성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당나라의 저작인 「원화성전」에 나타난다. [성씨의 유래] 주요 출처는 두 가지로, 첫째는 미씨에서 비롯된다는 설이다. 「전국책」에 따르면 춘추시대 초나라에는 학식이 깊고 기억력이 뛰어났던 귀족 관료 화가 있었는데, 한때 왕이…

성씨는 미씨(米氏)에서 유래하며, 시조는 좍화(卓華)이다. 현대 중국에서 가장 흔한 성씨 가운데 256위에 해당한다. 명나라 시대에 홍퉁의 대회수(大槐樹)에서 이주한 좍씨 일족의 선조들은 본래 홍퉁현 평양부와 조성현에 호적을 두고 있었다. 명나라 초기에는 홍퉁의 대회수로 집결하여 타 지역으로 이주하도록 지시받았다. 청나라 말기에 이르러 그 후손들은 허난성, 산둥성, 허베이성, 베이징, 톈진, 산시성, 간쑤성, 안후이성, 장쑤성, 후베이성, 후난성, 랴오닝성, 헤이룽장성, 산시성 등지로 널리 분포하였다. 좍성씨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당나라의 저작인 「원화성전」에 나타난다.

[성씨의 유래] 이 성씨에는 크게 두 가지 유래가 있다. ① 미씨(米氏)에서 비롯되었다. ‘전국책’에 따르면, 춘추시대 초나라에는 화라는 이름의 고위 관리가 있었는데, 그는 학식이 깊고 기억력이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어느 날 왕궁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주관사의 보관하에 있던 모든 문서는 모두 구조되었으나, 한성씨의 유래를 기록한 대나무 쪽지 한 점만은 불길에 휩싸여 소실되고 말았다. 이에 분노한 초나라 왕은 주관사를 처형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화는 초나라 무왕에게 아뢰었다. “성씨의 기록이 천화로 소실되었으니, 이는 하늘이 당신의 왕조가 새롭게 시작될 것을 알리는 징표입니다.” 이를 듣고 크게 기뻐한 왕은 그러나 다시 말하였다. “그래도 조상의 기록은 없어서는 안 되오.” 그러자 화는 대답하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은 저의 머릿속에 다 남아 있으니, 다시 필사하여 올릴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고대 노중의 여섯째 아들인 계련으로부터 시작하여 각 세대를 그대로 암송하며 일일이 외웠고, 심지어 모든 적법한 후계자의 출생·사망·즉위 연도까지도 완벽히 기억해냈다. 이에 놀라면서도 기쁜 마음으로 무왕은 주관사의 사형을 면하게 하고, 그에게 촉의 영지를 하사하였다. 이로써 화는 촉화로 불리게 되었고, 그의 후손들은 이후 자신의 영지 이름을 따서 촉성을 성씨로 삼게 되었다. ② 고대 소수민족의 성씨에서 유래하였다. ‘명사’에 의하면, 명나라 시대에 촉시방은 송원 설이부채의 이족 사람이었다.

[성씨의 유래] 좌씨 성의 주요 시조 출신지는 남양군과 서하군이다. 서하군은 전국시대 위나라 초기에 설치되었으며, 한나라 원수오 연간 4년(기원전 125년)에 다시 설치되어 오늘날 산서성과 섬서성 사이의 황하 연안 지역을 포괄하였다.

[문중회관] 좌씨 성의 주요 문중회관은 바로 보덕당이다. 보덕당: 후한 시대에 좌모는 당대 최고의 학식을 지닌 인물로 명성이 높았다. 그는 아량과 어짊, 겸손과 사랑으로 타인에게 자애와 연민을 베풀며 예와 공손함을 갖추어 행동하였다. 초기에는 승상부의 관리로 궁중 내부 사무를 관장하였고, 이후 황실의 기밀 업무를 전담하는 ‘미령’이라는 직책으로 승진하였다. 그는 백성을 아버지가 아들을 대하듯 애정으로 돌보았으며, 늘 덕을 칭송하고 솔선수범하여 선한 이들과 덕스러운 행적을 만나면 곧바로 이를 세상에 드러내 모든 이의 귀감으로 삼았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사회의 도덕적 풍토를 크게 개선하는 데 성공하였다. 한나라 무제는 그를 태사의 지위에 올려 보덕후로 봉하였다.

[대문 대련] 좌씨 종가의 주요 대문 대련은 다음과 같다: “린궁의 부유한 거부(좌왕손);” “덕행으로 귀명을 받음(좌모).” “동한 시대에 명성이 높았음(좌모);” “서희에서 공적을 드러내어 탁월함(좌리).”

[주목할 인물] ‘중국 성명대사전’에는 ‘탁’씨 성을 가진 인물이 19명 수록되어 있으며, ‘중국역대성명대사전’에는 25명이 기재되어 있다. 이 성을 지닌 역사적 위인들로는 서한 시대에 부녀인 탁왕손과 탁문군이 있고, 동한 시대에는 광무제의 태부를 지낸 탁모가 있으며, 송나라 시대에는 단시의 대가인 탁천이, 명나라 시대에는 풍화 출신의 화가 탁적이 있다.

[인구] 제4차 전국 인구조사에 따르면 산시성에는 작씨 성을 가진 사람이 1,279명으로 집계되며, 그중 린펀시에 863명, 홍퉁현에 75명이 거주하고 있다. [제단장] 작씨 문중의 조상 위패는 큰 느티나무 아래에 위치한 시조사당 내 제단장 4호에 모셔져 있다.

[족보학] 좌성의 주요 족보 자료로는 ‘장시성 펑신 좌씨 족보 미수록본’(장시도서관)이 있다.

[항렬명] 푸양시 후장의 소주족에서는 18세대부터 항렬명 순서가 다음과 같습니다: “인의로 조상의 길을 열고, 길한 덕이 더욱 자라며, 선을 닦아 기반을 넓히고, 번영과 복록이 만대에 이르며, 군자는 충과 의를 지키고, 남방을 평정하려는 뜻으로 도덕의 길을 굳게 견지하며, 재능과 덕이 사방으로 융성하고, 양육과 배양으로 영원한 복을 누리게 하니라.”

[이주] 홍퉁 대회화나무 이주민들 가운데, 텅현의 좌씨 문중의 시조는 명나라 홍무 연간에 산서성 홍퉁에서 텅현 시강진 좌루촌으로 이주하였다. 한편 푸양의 좌씨는 명나라 영락 2년에 산서성 홍퉁현 둔리촌에서 푸양현 찬부의 후창샤오에 위치한 좌가정촌으로 이전한 위씨 성을 가진 시조를 모시고 있으며, 오늘날까지 25대에 걸쳐 계통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또한 푸양 좌씨의 또 다른一支는 영락 10년에 산서성 홍퉁현 둔리촌에서 푸양현 옛 찬부의 난다자촌으로 이주한 시조로 거슬러 올라가며, 명나라 성화 연간에는 그 마을이 다시 지안향의 좌가재촌으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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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통 큰 회화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