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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 성씨

2018-09-21


이 가문은 부하라 왕가에 그 계통을 두고 있으며, 시이드 쿠타브 알딘을 시조로 한다. 명나라 시대에는 핑양부, 홍퉁현, 자오청현 등지에서 유래한 시이씨의 선조들이 황제의 칙령에 따라 대거 홍퉁의 대회수(大槐樹)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청나라 말기에 이르러 그 후손들은 허난성, 산둥성, 허베이성, 베이징, 산시성, 간쑤성, 닝샤, 산시성 등 여러 지역으로 널리 퍼졌다. 시이 성씨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명나라 시대의 「만성종보」에 나타난다. [유래] 이 성씨는 ‘십삼대 이슬람 성씨’ 가운데 하나로, 중앙아시아 부하라의 왕가 계통에서 비롯되었다. 북송 신종 때 부하라 국왕은 동생 에르샤와 함께 5천여 명의 신도를 거느리고 중앙아시아에서 동쪽으로 이동하여 변경(카이펑)에 도착하였으며, 이후 중원 지방에 정착하였다. 원나라 초기에는 부하라 왕가의 일원들이…

이 가문은 부하라 왕가에 그 계통을 두고 있으며, 시이드 쿠트브 알딘을 시조로 한다. 명나라 시대에 평양부 홍동현과 조성현에 본적을 둔 사이씨의 선조들은 홍동의 대회수지에서 다른 지역으로 대규모 이주된 인물들 가운데 하나였다. 청나라 말기에 이르러 그 후손들은 허난성, 산둥성, 허베이성, 베이징, 산시성, 간쑤성, 닝샤, 산시성 등 여러 지역으로 널리 퍼졌다. 사이 성씨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명나라 시대의 『만성종보』에 나타난다.

[성씨의 유래] 이 성씨는 ‘십삼대 무슬림 성씨’ 가운데 하나에서 유래하며, 중앙아시아 부하라 왕실의 계통을 근원으로 한다. 북송 신종 시대에 부하라 국왕과 그의 동생 에르샤는 오천여 명에 달하는 추종자들을 이끌고 중앙아시아에서 동쪽으로 이주하여 오늘날의 카이펑인 변경으로 들어와 중원 지역에 영구히 정착하였다. 원나라 초기에 부하라 왕족의 후손 사드 알딘 우마르가 선양왕으로 봉해져 운남을 다스리도록 파견되었다. 지원 연간에 사드 알딘은 별세하였고, 그에게서 아홉 명의 아들과 열세 명의 손자가 태어났으며, 이들로부터 나, 마, 사, 하, 샤, 사이, 수, 후, 네이, 바오, 무, 수, 하오 등 열세 개의 성씨가 분화되었다. 오늘날까지도 많은 후손들이 운남성 전역에 퍼져 살고 있으며, 또 다른 한 지파는 산둥성 지난에 거주하고 있다.

[성씨의 기원] 사이 성의 주요 시조 출신지는 명나라 시대의 윈난, 산둥성의 지난, 그리고 허난성의 남양 등이다.

[주목할 만한 인물] ‘중국 성씨대사전’에는 ‘사이’ 성씨에 대한 항목이 두 개 수록되어 있으며, ‘중국 역대 성씨대사전’에는 일곱 개의 항목이 실려 있다. 역사상 ‘사이’ 성을 가진 인물 가운데 명나라 시대에는 원등 출신으로 광신부사로 재직한 사이웨이위안과 역시 원등 출신인 사이충젠이 있었다. 또한 명나라 시대에는 과거에 급제한 사이바오가 징하이진의 군사위원 직을 지낸 바 있다.

[인구] 제4차 전국 인구조사에 따르면 산시성에는 ‘사이’ 성을 가진 사람이 28명으로, 그중 린펀시에 4명, 홍퉁현에 1명이 거주하고 있다.

[제단장] 사이 씨의 조상 위패는 큰 느티나무 아래에 자리한 제사당의 제5호 제단장에 모셔져 있다.

키워드:

홍통 큰 회화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