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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성씨
2018-10-12
이 가문의 계통은 자씨(子氏)로 거슬러 올라가며, 비안보(卞伯)와 그 아들인 자비안(子卞)을 최초의 시조로 삼고 있다. 이들은 오늘날 중국에서 두 번째로 흔한 성씨로 여겨진다. 명나라 시대에 비안씨의 선조들은 본래 핑양부(平陽府), 홍퉁현(洪洞縣), 자오청현(趙城縣) 출신이었다. 명나라 초기에는 조정의 칙명에 따라 홍퉁의 큰 느티나무 아래에 모여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게 되었으며, 청나라 말기에 이르러서는 그 후손들이 허난성, 산둥성, 허베이성, 베이징, 톈진, 산시성, 간쑤성, 안후이성, 장쑤성, 후베이성, 후난성, 랴오닝성, 헤이룽장성, 산시성 등 여러 지역으로 널리 퍼졌다. 비안 성씨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동한 시대의 저작인 「천부론」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성씨의 유래] 이 성씨에는 크게 두 가지 유래가 있다. ① 자흥 계통에서 비롯되었다. ‘원화성전’에 따르면, 상나라 시대에는 변경 지방에 제후국들이 존재하였고, 그 흔적은 주나라 시대에도 남아 있었다. 동주 시대의 헌왕 때에는 변백이라는 고위 관료가 있었는데, 헌왕이 왕궁과 궁정 원림을 확장하려 하자 궁궐 인근의 대신들의 저택을 강제로 압수하였다. 변백의 집도 그 대상에 포함되었고, 이로 인해 조정 내부에서는 큰 불만이 일어났다. 이에 변백을 비롯한 네 명의 고위 관료는 헌왕의 동생인 퇴공자를 지지하여 쿠데타를 일으켰다. 위나라와 연나라가 이들을 지원하여 헌왕을 축출하였다. 이후 정나라의 이공의 도움으로 헌왕이 복위하였고, 퇴공자와 변백은 모두 처형되었다. 이때부터 변백의 후손들은 그의 이름 가운데 ‘변’자를 따서 성씨로 삼게 되었다. ② 또한 자흥 계통에서 유래하였다. ‘진류풍속전’과 ‘통지·시조략’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춘추시대 말기 송나라 평공에게는 ‘자변’이라는 호를 가진 공자 유시라는 아들이 있었으며, 그는 조정의 고위 대신으로 활동하였다. 평공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원공이 그 뒤를 이었다. 당시 화씨 일족이 중앙 정권을 장악하고 오만하게 굴며 원공을 존중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을 우려하며 자변은 원공과 함께 화씨 일족을 제거할 음모를 모의하였다. 그러나 이 계획이 누설되어 화씨와 상씨 일족이 먼저 내분을 일으키고, 그 과정에서 자변을 비롯한 여러 왕족을 살해함으로써 송나라 국가는 혼란에 빠졌다. 이후 송나라 원공은 제나라, 진나라, 조나라, 위나라 등의 지원을 받아 화씨와 상씨 일족을 격파하고 조정의 질서를 회복하며 행정 체계를 재정비하였다. 자변의 손자 은은 공작대신으로 임명되어 국가의 정사를 맡았고, 할아버지의 충직과 의로움을 기리기 위해 할아버지의 이름 가운데 ‘변’자를 따서 자신의 성씨로 삼았다.
[성씨의 유래] 변씨의 주요 성씨 유래는 농서군, 진류군, 그리고 진성으로 나뉜다. 농서군은 전국시대 진나라 소양왕 27년(기원전 280년)에 설치되었으며, 이름은 농산 서쪽에 위치한 데서 유래하였다. 그 영역은 대략 오늘날 간쑤성 동부의 동향현 동쪽과 농서 지역에 해당한다. [당호] 변씨와 관련된 주요 당호로는 ‘부사당’이 있다. 부사당은 후한 시대에 변소가 자호가 소현으로, 문장의 재능으로 명성이 높아 수백 명의 제자를 가르쳤다. 어느 날 낮에 잠들어 있던 그를 두고 제자들이 몰래 비웃으며 말하기를 “변 소현은 배가 불룩 튀어나와 글을 읽기는 게으르고 오직 잠만 자려 하니”라고 했다. 이에 변소는 이렇게 맞받아쳤다. “‘변’은 내 성이고, ‘소현’은 내 이름이니라. 내 배는 둥글어 마치 오경을 담아두는 궤짝과 같으니라. 나는 종일토록 경전을 숙고하며, 졸면 주공과 함께 꿈속에서 함께하느니라. 마음이 평온할 때에는 공자가 세상을 구하려 애썼던 것처럼 진지하게 생각하느니라. 스승조차도 놀림을 받을 수 있다면, 당신들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나를 조롱하려 드는가?” 그의 조롱을 들은 제자들은 부끄러움에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하고 망연자실했다. 이후 변 소현은 관직을 거쳐 상서령에 올랐고, 나중에는 진나라의 재상까지 지냈다. 또한 그는 「시·악·서각」이라는 저술을 남기기도 했다.
[가문 현판 대련] 변씨 가문의 주요 대련은 다음과 같다: “오경을 품에 모시니”(변소); “사대가 중에 이름 높으니”(변공). “효행을 먼저 삼고, 지식을 속에 간직하니”(변소); “문예와 예법에 뛰어난 재능이 있나니”(변양). “불자의 참된 아들로 벼슬하니”(변호); “조정에서 빛나는 명성을 얻으니”(변수). 저명한 정치가로, 루룽의 총독이었던 변수.
[주목할 만한 인물들] ‘중국 성명대사전’에는 변씨 성을 가진 인물이 55명 수록되어 있으며, ‘중국 역사 전반에 걸친 성명대사전’에는 60명이 기재되어 있다. 변이라는 성을 지닌 역사적 위인으로는 한나라 시대의 변양—군의 출신으로 주강의 태수를 지낸 인물—와 문장과 언변이 뛰어나 수백 명의 제자를 거느렸던 자효현이라는 자를 가진 변소, 남당 시대의 승주 출신 변호, 당나라 경조 출신의 화가 변란, 그리고 명나라 시대의 화가 변문진과 학자 변공 등이 있다.
[인구] 제4차 전국 인구조사에 따르면 산시성에는 변씨 성을 가진 사람이 21,959명이며, 그중 린펀시에 2,182명, 홍퉁현에 288명이 거주하고 있다.
[제단장] 비안씨의 조상 위패는 큰 느티나무 아래에 자리한 사당의 제5호 제단장에 봉안되어 있다.
[이민] 홍퉁 큰 느티나무 이민 가운데, 변씨의 한 계통은 시유라는 조상을 기원으로 하며, 명나라 초기에 산시성 홍퉁에서 만청현 낭구뎬촌으로 이주한 뒤 지금까지 22대에 걸쳐 내려오고 있다. 또 다른 계통 역시 변씨로, 그 시조인 광은 원래 산시성 린펀 출신으로 허베이성의 허젠, 런추우, 바저우 등지에서 관직을 지냈다. 명나라 천순 연간에 그는 벼슬을 사퇴하고 징하이로 낙향하였다. 그에게는 청, 성, 강, 한, 회의 다섯 아들이 있었는데, 변회는 톈진시 시칭구 류리청에 정착하였고, 변한은 징하이에 거주하게 되었다. 오늘날 현 내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변씨 성씨를 가진 이들은 모두 변한의 후손으로, 현재 총 인구는 2,200명에 이른다. 한편 대흥 변씨 계통은 명나라 홍무제 치세 8년에 산시성 홍퉁의 광지사에서 베이징시 대흥현 팡거좡촌으로 이주한 것을 시조로 한다. 이와 함께 펑전 변씨 계통은 명나라 홍무 연간에 산시성 홍퉁에서 펑전현으로 이주한 조상을 시조로 한다.
키워드:
홍통 큰 회화나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