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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 성씨
2018-10-20
이 가문은 기씨(季氏)에 그 연원을 두며, 최초의 시조로는 백기(伯奇)와 공자기(公子期)가 꼽힌다. 명나라 시대에는 평양부·홍동현·조성현 등지에서 유래한 기씨 일족이 홍동의 큰 느티나무 아래에서 황제의 칙령에 따라 대거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집단 가운데 하나였다. 청나라 말기에 이르러서는 그 후손들이 허난성, 산둥성, 허베이성, 산시성 등 여러 지역으로 널리 퍼져 나갔다. 기 성씨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당나라의 저작인 「원화성전」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성씨의 유래] 이 성씨에는 크게 세 가지 유래가 있다. ① 조부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고금성씨종원」, 「성씨편람」, 「통지대전—족보」에 따르면, 주나라 중흥 시대에 주 선왕 때의 대신 은기부의 아들이 박기라 하였고, 그 방계 후손들은 조부의 이름인 기를 따라 성을 삼았다. ② 제씨에서 유래하였다. 춘추시대에 노나라 소공의 아들인 제후의 후손들이 선조의 이름을 기리기 위해 제성을 취하였다. ③ 남북조 시대 북방 소수민족의 성씨 변경에서 발생하였다. 「위서」의 「관직지」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유유족의 한 지파는 기진이라는 복합 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중원으로 들어온 뒤 이를 단일자 성인 제로 간략화하였다.
[성씨의 유래] 기씨의 주요 성씨 유래지는 하남군이다. 하남군은 한나라 고조 시대에 설치되었으며, 오늘날 허난성 뤄양시 일대에 해당한다.
[유명 인물] 기씨 성을 가진 역사적 인물 가운데 북위 시대에는 기도현이 있었고, 명나라 시대에는 한때 학정을 지낸 진사인 기경중이 있었다.
[인구] 제4차 전국 인구조사에 따르면 산시성에는 기씨 성을 가진 사람이 19명 있으며, 그중 린펀시에 5명, 홍둥현에 1명이 거주하고 있다.
[제단장] 기씨 가문의 조상 위패는 큰 느티나무 아래에 자리한 사당의 제단장 5호에 봉안되어 있다.
키워드:
홍통 큰 회화나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