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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성씨
2018-11-29
변씨는 기씨 계통을 시조로 하며, 변명·변백·노나라 장공·변수 등을 시조로 삼는다. 현대 중국 성씨 가운데 269위에 해당한다. 명나라 시대에는 평양부·홍동현·조성현 등지에서 유래한 변씨 가문이 홍동의 대회수 아래 황제의 칙령에 따라 대규모로 타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청나라 말기에 이르러 그 후손들은 허난성·산둥성·허베이성·베이징·톈진·산시성·간쑤성·안후이성·장쑤성·후베이성·후난성·랴오닝성·헤이룽장성·산시성 등지로 널리 퍼졌다. 변씨 성의 최초 기록은 당나라의 저작인 「원화성전」에 나타난다.
[성씨의 유래] 이 성씨에는 크게 두 가지 유래가 있다. ① 주나라 문왕의 여섯째 아들인 조나라의 정도공에게서 나온 지족에서 비롯되었다. ‘원화성전’에 따르면, 정도공의 한 지파가 변이 땅에 봉해졌는데, 변이의 위치는 오늘날 산둥성 연주와 사수 근처에 해당하며, 그 지배자는 변후로 불렸고 그 후손들이 차례로 변성을 성으로 삼았다. ② 국가의 이름을 성으로 삼은 데서 유래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황제에게 용묘라는 아들이 있었고, 그로부터 무융이 태어났다. 무융의 아들 명은 변국에 봉해졌는데, 그 영토는 현재 산둥성 사수현 변교진 일대에 자리하고 있었다. 변명으로 알려진 그의 후손들은 변을 성으로 삼았다. ③ 노나라의 노씨가 변으로 바뀌면서 생겨난 경우이다. ‘사기’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춘추시대에 노나라의 장공이 변에서 고위 관직을 맡았으며, 옛 변이 성은 오늘날 산둥성 사수현에 위치해 있었고, 그 거주민은 한 번의 싸움에서 두 마리의 맹호를 처치한 용감한 장수로 명성이 자자했다. 제나라가 노나라를 침략했을 때, 장공을 두려워하여 일부러 그의 영지를 우회하여 진군하였다. 이에 따라 그의 후손들은 변을 성으로 삼게 되었다. ④ 선조의 이름을 성으로 삼은 데서 유래한 경우이다. ‘장자’와 ‘여씨춘추’에 따르면, 하나라 말기에 변수라는 이름의 저명한 학자가 있었다. 상나라의 탕왕이 걸을 멸망시키려 할 때, 변수를 찾아가 의논을 구했다. 변수는 “이 일은 저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라고 단호히 거절하였다. 그러자 탕왕이 “그렇다면 누가 저에게 조언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묻자, 변수는 “저는 알지 못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이후 탕왕이 하나라를 멸망시키고 걸을 남초로 유배시킨 뒤, 다시 변수를 찾아가 왕위를 내놓으라고 권했다. 변수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이미 걸을 물리칠 계획을 세워 놓고 저에게 조언을 구하러 오셨으니, 분명 반란의 책임을 저에게 떠넘기려는 속셈이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천하를 얻고도 여전히 저에게 양위하겠다고 하시니, 이는 단지 제가 천하를 독점하려는 사심이 없음을 보여 주기 위한 방편일 뿐입니다. 사람들은 당신을 고금을 통틀어 드문 현인이라 칭하지만, 그런 현인조차 늘 남을 해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으니, 과연 그러한 삶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 말을 남긴 채 그는 강물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후손들은 이후 변을 성으로 삼았다.
[씨족의 기원] 변씨의 주요 시조 관할지역은 계음군과 계양군이다. 계양군: 진나라 혜제 재위기(서기 290년~306년)에, 진류군의 일부가 계양군으로 개편되어 오늘날 허난성 란카오현 동북부에서 산둥성 서북부에 이르는 지역을 포괄하였다.
[성씨의 유래] 변씨의 주요 종사당은 회비당과 영양당이다. 회비당과 영양당: 춘추시대에 초나라 사람 변하는 경산에서 다듬지 않은 옥을 발견하였다. 그는 이를 초나라의 제왕 이에게 바쳤으나, 왕은 “이는 분명히 단지 돌일 뿐이다”라고 일축하고, 임금을 속였다는 이유로 그의 왼발을 베어 버렸다. 무왕이 즉위하자 변하는 다시금 그 옥을 바쳤다. 그러나 무왕 역시 이를 속임수로 간주하여 이번에는 오른발까지 베어 버리게 하였다. 문왕 때에 이르러 변하는 두 개의 절단된 발을 보고도 옥을 바치기는 망설였으나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옥을 품에 안고 통곡하였다. 문왕이 사람을 보내 물었다. “왜 우십니까? 발을 베어 버리는 형벌에 불만이신가요?” 변하는 대답하였다. “초나라 왕께서 저의 두 발을 모두 베어 버리셨을 때는 아무런 슬픔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다만 귀한 옥이 한낱 돌로 잘못 칭해지고, 충직한 신하가 거짓으로 모함을 당했다는 사실이야말로 저를 참으로 애통케 하는 것입니다!” 이를 들은 문왕은 장인을 시켜 그 옥을 다듬게 하였고, 과연 그것은 천하에 비할 수 없는 보물로 드러났다. 이후 역대 왕조를 통해 전해진 제국의 인장들도 바로 이 옥으로 제작되었다. 문왕은 변환을 영양후로 봉하였으나, 변하는 그 작위를 사양하였다.
[가문의 대련] 변씨 가문의 대표적인 대련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덕이 오광과 같으니(변수), 선비의 기개가 끝까지 이어지네(변언지). 용기가 범과 유와도 같으니(변장자), 덕이 오광과 같으니(변수). 세 가지 공물로 다듬지 않은 옥을 바치니(변합), 여섯 마리 용이 황제의 좌우를 받들며(변취). 옥덩이를 품속에 숨기고(변합), 은 비녀로 머리를 장식하니(황후 변).
[주요 인물] ‘중국 성명대사전’에는 변씨 성을 가진 인물이 30명 수록되어 있으며, ‘중국 역대 성명대사전’에는 37명이 기재되어 있다. 이 성을 지닌 역사적 인물로는 춘추시대 초나라의 변하로, 경산에서 흠결 없는 옥을 발견한 인물이며, 진나라 원거 출신으로 대사와 대간을 지낸 변취, 이부상서를 역임한 변호, 원나라 시대의 시인 변사의, 명나라 시대의 화가이자 여성 시인이자 화가이며 악기 연주자였던 변유유, 이름난 기녀 변옥경, 그리고 청나라 시대에는 고문 연구가 변빈, 운남·귀주 총독 변삼원, 그리고 당송 시대의 서화 감정가 변용유 등이 있다.
[인구] 제4차 전국 인구조사에 따르면 산시성에는 편씨 성을 가진 사람이 2,707명이며, 그중 린펀시에 627명, 홍둥현에 60명이 거주하고 있다.
[제단장] 비안씨의 조상 위패는 큰 느티나무 아래에 자리한 사당의 제5호 제단장에 모셔져 있다.
[이주] 홍둥 대회나무 이주민의 지파 가운데 하나인 황화변씨는 그 시조를 유, 우, 양, 리, 변 등 다섯 성씨로 거슬러 올라간다. 명나라 영락 연간 2년에 산시성 홍둥에서 황화시 황화진으로 이주하여 다섯 곳에 각각 마을을 조성하였고, 이들 마을을 통칭해 변창장촌이라 불렀다. 또 다른 변씨 계통은 베이징 출신으로, 그 시조가 영락 연간 2년에 산시성 홍둥에서 베이징시 멘터우구의 준샹으로 이주하였다. 한편, 다청의 변씨 한 갈래는 영락 연간에 산시성 홍둥에서 다청현 핑수진 변장촌으로 이주한 것을 시조로 한다.
키워드:
홍통 큰 회화나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