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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敏) 성씨

2019-01-07


성씨의 유래는 기씨(姬氏)에 두며, 시조는 노나라의 민공과 민요이다. 현대 중국 성씨 가운데 191위에 해당한다. 명나라 시대에는 평양부, 홍동현, 조성현 등지에서 발원한 민씨 일족이 홍동의 큰 느티나무 아래에서 황제의 칙령에 따라 대거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청나라 말기에 이르러 그 후손들은 허난성, 산둥성, 허베이성, 베이징, 톈진, 산시성, 간쑤성, 안후이성, 장쑤성, 후베이성, 후난성, 랴오닝성, 헤이룽장성, 산시성 등 여러 성에 걸쳐 널리 분포하게 되었다. 민씨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북송 시대의 저작인 「흥계」에 나타난다. [성씨의 유래] 이 성씨의 근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① 기씨에서 비롯되었다. 「좌전」과 「통지·세보」에 따르면, 주나라의 시호 제도에서는 젊은 나이에 요절하거나 부자연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난 왕과 제후들에 대해…

성씨의 기원은 지씨(姬氏)에 있으며, 그 시조는 노나라의 민공과 민요이다. 현대 중국 성씨 가운데 191위에 해당한다. 명나라 시대에는 평양부, 홍동현, 조성현 등지에서 유래한 민씨 가문이 홍동의 큰 느티나무 아래에서 황제의 칙령에 따라 대규모로 타 지역으로 이주한 집단 가운데 하나였다. 청나라 말기에 이르러 그 후손들은 허난성, 산둥성, 허베이성, 베이징, 톈진, 산시성, 간쑤성, 안후이성, 장쑤성, 후베이성, 후난성, 랴오닝성, 헤이룽장성, 산시성 등 여러 지역으로 널리 퍼졌다. 민 성씨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북송 시대의 저작인 「흥계」에 나타난다.

[성씨의 유래] 이 성씨에는 크게 두 가지 유래가 있다. ① 지씨(姬氏)에서 비롯되었다. ‘좌전’과 ‘통지’에 따르면, 주나라 시대에는 시호 제도에 따라 요절하거나 부자연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난 왕과 제후에게 ‘민’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춘추시대에 노나라의 민공은 이름이 기(季)였는데, 청부에게 살해당했으므로 그 후손들이 ‘민’을 성으로 삼게 되었다. ② 또한 조상의 이름을 본떠 만든 성씨에서 유래하였다. 상나라 말기, 상왕 주가 폭정을 일삼아 백성들의 원성이 높았던 반면, 주나라 문왕은 덕망이 높아 많은 사람들이 따랐다. 이에 상왕은 문왕을 체포하여 리라는 곳에 가두고 처형하려 하였다. 문왕을 구하기 위해 그의 참모 중 한 사람인 민요는 진귀한 보물과 아름다운 여인들을 구해 오고, 상왕의 총신인 부중에게 뇌물을 주어 이를 상왕에게 바치도록 했다. 상왕은 기쁨에 겨워 유신씨의 미인을 껴안으며 “이 보물 하나만으로도 기창을 석방할 가치가 있으니, 하물며 이와 같은 온갖 재물들일까?”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문왕을 석방함과 동시에 군사 원정을 감행할 수 있는 특권까지 부여하였다. 문왕은 이 기회를 틈타 치국에 전념하고 강자자를 스승으로 모셨으며, 마침내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세웠다. 민요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제후로 봉해졌고, 그의 후손들은 이후 ‘민’을 성으로 삼게 되었다.

[문씨의 본관지] 문씨의 주요 선대 본관지는 농서군, 노군, 태원군이다. 농서군은 전국시대 진나라 소양왕 27년(기원전 280년)에 설치되었으며, 이름은 농산 서쪽에 위치한 데서 유래하였다. 그 영역은 대략 오늘날 간쑤성 둥샹현 동쪽 일대와 농서 주변 지역에 해당한다.

[문파 회관] 민씨 성의 대표적인 문파 회관은 소효당이다. 소효당(효심과 형제애)은 춘추시대에 공자의 제자였던 민자천이 어린 시절 계모에게 학대를 당했던 일화에서 유래한다. 계모는 자신의 친아들 둘을 두고 있었는데, 겨울이 되면 재털로 자천의 옷을 속을 때 쓰고, 자신이 낳은 아들들에게는 솜을 넣어 주었다. 이를 알게 된 아버지가 계모와 이혼하려 하자, 민자천은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에게 간청하며 말했다. “어머니께서 살아계실 때에는 저만 한 아들이지만,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면 우리 세 형제가 추위에 떨게 될 것입니다!” 그의 간곡한 말에 감동한 계모는 다시는 그를 학대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였다. 민자천은 계모에게 효도했을 뿐만 아니라, 동생들까지도 귀히 여기며 사랑하였다.

[가문 현판 대련] 민씨 가문의 대표적인 대련은 다음과 같다: “오현으로 명성 높다”(민홍); “사류에 속한 덕행”(민자천). “갈대옷으로 어머니의 마음을 움직이다”(민순); “간단한 문서로 남편을 도우다”(민회영). “지극한 효심이 영원한 명성을 낳는다”(민순); “탁월한 재능이 단연 돋보인다”(민홍).

[주목할 만한 인물들] ‘중국 성씨대사전’에는 민씨 성을 가진 인물이 30명 기록되어 있으며, ‘중국 역대 성씨대사전’에는 38명이 수록되어 있다. 민이라는 이름을 지닌 역사적 인물로는 춘추시대에 노나라의 고위 관료였던 민자마가 있고, 그의 아들 민손은 자가 자천으로 공자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당나라 시대에는 우서성감과 동시에 진회군 절도사를 겸임한 민서가 있었으며, 한나라 시대에는 태원 출신의 민공이 있었다. 동한 시대에는 상서령의 참모인 민중서와 민예가 있었고, 청나라 시대에는 광지 출신의 화가 민진과 함께 적흑식 인쇄법과 오색 인쇄술을 창안한 저명한 출판인 민개인이 있었다.

[인구] 제4차 전국 인구조사에 따르면 산시성에는 민씨 성을 가진 사람이 495명이며, 그중 린펀시에는 37명이 거주하고 있다.

[제단장] 대회화나무 아래에 자리한 사당의 제5호 제단장에는 민씨 문중의 조상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키워드:

홍통 큰 회화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