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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게

2019-01-07


조상으로 삼는 시조는 이씨였다. 명나라 시대에 평양부 홍동현과 조성현을 기원으로 하는 곽씨 일족은 홍동의 큰 느티나무 자리에서 황제의 칙령에 따라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집안 가운데 하나였다. 청나라 말기에 이르러 그 후손들은 허난성, 산둥성, 허베이성, 베이징, 산시성, 간쑤성, 안후이성, 장쑤성, 랴오닝성, 헤이룽장성, 산시성 등지로 널리 퍼져 나갔다. 곽씨 성의 최초 기록은 『종합지지·세보』에 나타난다. [성씨의 유래] 이 성씨의 근원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① 지명을 성으로 삼은 경우이다. 『명현전집』에 따르면, 하나라 시대 태강 임금은 어질지 못한 폭군이었고, 그의 다섯 아우들이 서로 내분을 일으켜 나라가 혼란에 빠졌다. 이때 동이족의 유궁 부족이 세력을 키워, 그 우두머리인 후예가 기회를 틈타 군사를 일으켜…

조상의 시조는 이씨였다. 명나라 시대에 평양부, 홍동현, 조성현 등지에서 유래한 곽씨 일족은 명 초기 홍동의 대회목 아래에서 황제의 칙명에 따라 대규모로 타지로 이주한 집단 가운데 하나였다. 청나라 말기에 이르러 그 후손들은 허난성, 산둥성, 허베이성, 베이징, 산시성, 간쑤성, 안후이성, 장쑤성, 랴오닝성, 헤이룽장성, 산시성 등 여러 지역으로 널리 퍼져 있었다. 곽씨 성의 최초 기록된 언급은 『종합지지·가보편』에 나타난다.

[성씨의 유래] 이 성씨에는 크게 두 가지 유래가 있다. ① 봉지에 기인한 성씨로, ‘명현시조연행례고’에 따르면 하나라 태강왕은 어리석은 군주였고, 그의 다섯 아우들이 내부 분쟁을 일으켜 나라가 혼란에 빠졌다. 당시 동이족의 유궁 씨족이 세력을 키워 지도자 후예가 기회를 틈타 군사를 일으켜 정권을 전복하였다. 후예의 측근 한탁은 후예가 날마다 사냥에만 몰두하는 틈을 노려 국정을 장악하였고, 또한 은밀히 후예의 아내와 간통하여 교와 의라는 두 아들을 낳았다. 이후 한탁은 후예를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하였다. 교와 의가 성장하자 남다른 용기를 보였고, 한탁은 교에게는 워(沃)의 봉지를, 의에게는 거(戈)의 봉지를 하사하였다. 수년 뒤, 태강의 종손인 소강이 여러 제후들을 규합하여 한탁과 그의 아들을 참살하고 하나라를 다시 회복하였다. 의가 처형된 뒤, 그의 자손들은 자신의 봉지 이름인 거를 성으로 삼게 되었다. ② 또 다른 유래는 사(姒) 성에서 비롯된다. ‘흥보’와 ‘통지·시조략’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주나라 초기 무왕이 귀족들에게 봉지를 분봉할 때, 선대의 성군 우임금의 후손들에게 거의 봉지를 하사하였다. 거의 영지는 송나라와 정나라 사이에 위치했으며, 그 후손들은 거를 성으로 삼았다. [문중의 본관] 거 성과 관련된 주요 본관은 임해군과 형주군이다. 임해군은 오나라 태평 연간 2년(기원전 257년)에 설치되었으며, 대체로 오늘날 저장성의 동부 해안 지역, 상산항 이남에 해당한다.

[문파 회관 명칭] 지씨의 주요 문파 회관으로는 평운회관과 평구회관이 있다. 명나라 시대에 지상유는 라오팽현의 현령으로 재직하며 공평무사한 자세로 정사를 집행하였다. 라오팽은 바다와 매우 가까워 해적들이 자주 상륙하여 난을 일으키곤 하였다. 지상유는 군사를 파견하여 이를 진압하는 대신, 다른 방책을 택하였다. 당시 현에는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독초가 있었는데, 민간에서는 이를 악용하는 일이 잦았다. 지상유는 이러한 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모두 소집하여 “이 독초의 사용을 엄금한다”고 선포하였다. 그리고 이미 죄를 지은 이들에 대해서는 기소를 유예하고, 매일 자신들이 채취한 독초를 관아에 가져와 속죄하도록 명하였다. 이것이 과연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던 백성들은 앞다투어 그 잡초를 뿌리째 뽑아내어 순식간에 완전히 제거해 버렸다. 이에 지상유는 관리들에게 명하여 해안가의 우물들에 그 독초를 모두 버리도록 하였으며, 다만 각 마을마다 한 개의 우물을 남겨두어 주민들이 계속 물을 길어 쓸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해적들이 갑작스레 상륙하여 해안가의 이 우물들에서 목을 축이자, 그들 모두가 독에 중독되어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후로 해적의 위협은 크게 수그러들었고, 독초도 완전히 사라졌으며, 이를 악용하려는 불량한 지방민들도 더 이상 그런 일을 꾀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전해 들은 황제는 지상유를 형부의 주부로 승진시켰다.

[가문 정문의 대련] 지씨 가문의 주요 대련은 다음과 같다: “문풍이 일대 변혁을 이루었나니”(지의); “어사의 명성이 높아졌도다”(지언). “어사는 천성에 걸쳐 그 공적을 널리 펼쳤나니”(지언); “판관은 올곧은 학문의 기풍을 드높였도다”(지의).

[주목할 만한 인물들] ‘중국 성씨대사전’에는 ‘Ge’ 성을 가진 인물이 열한 명 기록되어 있으며, ‘중국 역사 전반의 성씨대사전’에는 열일곱 명이 수록되어 있다. 역사상 ‘Ge’ 성을 지닌 인물로는 원나라 시대의 화가 격수의, 송나라 시대에는 덕과 절개로 이름난 치저우 군사감찰관 격언, 명나라 시대에는 보산 출신으로 공부시랑을 지낸 격원리, 또한 화가이자 시인인 격산, 그리고 청나라 시대에는 핑후 출신의 서예가이자 이론가 격수지와 시인 격도가 있다.

[인구] 제4차 전국 인구조사에 따르면 산시성에는 성씨가 ‘Ge’인 사람이 1,846명이며, 그중 린펀시에 62명, 홍둥현에 3명이 거주하고 있다.

[제단장] 대회화나무 아래에 자리한 사당의 제5호 제단장에는 계씨 일가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이주] 홍둥의 큰 느티나무에서 유래한 각씨의 선조 계통은 명나라 영락 연간 3년에 산서성 홍둥현 광지사로부터 이주하여 바오디현 니우다오커우촌으로 정착하였다.

키워드:

홍통 큰 회화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