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성씨
2019-02-21
시조는 보교였다. 양씨 성의 가장 이른 기록상 언급은 북송 시대의 「고금성씨종원」에 나타난다. [성의 유래] 양씨는 계씨에서 비롯되었다. 주나라 유왕 때, 주 선왕의 아들 상이 양(楊) 땅에 봉해져 제후가 되었으며, 역사적으로 양후로 불렸다. 옛 양나라의 영지는 오늘날 산서성 홍둥현 일대에 자리하고 있다. 이후 양나라는 진나라에 병합되었고, 멸망한 뒤 양후의 후손들은 옛 나라의 이름을 따서 ‘양’을 성으로 삼았다. [본관] 양씨의 주요 본관은 천수군이다. 천수군은 서한 초기에 설치되었으며, 현재의 간쑤성 천수와 룽시 동쪽 지역에 해당한다. [저명인물] 양씨 성을 가진 역사적 인물 가운데 서한 시대에는 저명한 문학가 양웅이 있었다. [조상단] 양씨의 조상 위패는 대회화나무 아래에 있는 조상당의 제6호 내각에 모셔져 있다.
시조는 보교였다. 양 성씨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북송 시대의 저서인 「고금성씨종략」에 나타난다.
[성씨의 유래] 이 성씨는 기씨에서 비롯되었다. 주나라 유왕 시대에, 주나라 선왕의 아들 상이 양(楊) 땅에 봉해져 제후의 지위를 받았으며, 역사상 양후로 알려져 있다. 옛 양나라의 영토는 오늘날 산시성 홍퉁 일대에 위치해 있었다. 이후 양나라는 진나라에 병합되었고, 나라가 멸망한 뒤 양후의 후손들은 옛 나라의 이름을 따서 ‘양’을 성으로 삼았다.
[성씨의 유래] 양씨의 성씨 유래는 천수군이다. 천수군은 서한 초기에 설치되었으며, 오늘날 간쑤성의 천수와 룽시 지역 동쪽에 해당하는 지역에 자리했다.
[주목할 만한 인물] 양씨 성을 가진 역사적 위인들 가운데는 서한 시대의 저명한 문학가인 양웅이 있었다.
[제단장] 양씨 가문의 조상 위패는 큰 느티나무 아래에 자리한 사당의 제6호 제단장에 봉안되어 있다.
키워드:
홍통 큰 회화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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