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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李) 성씨
2020-03-13
그 계통을 대우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 문중의 시조는 이후작이었다. 명나라 시대에 이씨는 핑양부, 홍퉁현, 자오청현 등지에서 발원하였다. 명나라 초기에는 조정의 칙명에 따라 이씨 일족이 홍퉁의 큰 느티나무 아래로 집결하여 각지로 이주하게 되었고, 청나라 말기에 이르러서는 그 후손들이 허난성, 산둥성, 허베이성, 베이징, 톈진, 산시성 등 여러 지역으로 널리 퍼졌다. 이씨 성씨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동한 시대의 저술인 「천부론」에 나타나 있다.
[성씨의 유래] 이 성씨는 가문의 성으로 사용된 지명에서 유래하였다. 「만성대보」에 따르면, 우임금 시대에 그의 후손들이 이(黎) 땅에 봉해졌다고 한다. 고대에는 ‘이’를 ‘리’로 발음하였으며, ‘치’라는 별칭도 있었는데, 이는 오늘날 허난성 네이샹현 일대에 해당하며 옛 이름은 주탕현이었다. 비록 소국에 불과했으나 천여 년간 존속하다가 춘추시대에 진나라에 합병되고 말았다. 이에 따라 이의 제후들의 후손들은 ‘리’를 성으로 삼게 되었다. [문벌의 명향] 리 성씨와 관련된 대표적인 명향은 신채군이다. 신채군은 서진 황제 회제 재위 기간(290년~306년)에 여음군에서 분리되어 설립되었으며, 오늘날 허난성 신채현 일대를 포괄하였다.
[당호] 이씨의 주요 당호는 광야당이다. 광야당: 서한 시대에 이식기가 가난할 때 마을 어귀에서 문지기로 일하였다. 그는 한 고조에게 진류를 함락시키는 계책을 세워, 이후 제나라의 일흔여섯 성을 정복한 뒤 광야군후의 작위를 받았다.
[문인 대련] 이씨 성과 관련된 대련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수경의 저자, 이도원”; “취주후에 봉해진 이상”; “전략 논쟁의 달인, 이석기”; “수록의 편찬자, 이도원”; “교활한 술책으로 재물과 벼슬을 얻은 이지”; “산악을 뒤흔들 만한 위세를 지닌 이도원”; “예를 실천하고 검소하며 청렴하게 다스린 이대월”; “은퇴 후에도 그 덕행은 타의 귀감이 되었던 이중음”.
[주목할 만한 인물들] ‘중국 역대 성씨 대사전’에는 이씨 성을 가진 인물이 17명 기록되어 있으며, ‘중국 성씨 대사전’에는 16명이 수록되어 있다. 역사상 이씨 성을 지닌 저명인물로는 서한 시대에 진류군 고양현 출신으로 ‘광예군’이라는 자호를 가진 정치가 이상과 전략가 이석기, 동한 시대의 시인 이언, 북위 시대의 지리학자이자 촉록 출신의 이도원, 그리고 진나라 시대의 시인으로 건장 출신인 이권 등이 있다. 청나라에도 시인 이자덕이 있었다.
[인구] 제4차 전국 인구조사에 따르면 산시성에는 성씨가 ‘리’인 사람이 79명 있으며, 그중 린펀시에 46명이 거주하고 있다.
[제단장] 이씨 가문의 조상 위패는 큰 느티나무 아래에 자리한 사당의 제8호 제단장에 모셔져 있다.
키워드:
홍통 큰 회화나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