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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성씨

2020-03-16


그 계통은 노씨(盧氏)로 거슬러 올라가며, 노중(盧仲)을 시조로 한다. 명나라 시대에는 평양부·홍동현·조성현 등지에서 유래한 중씨의 선조들이 홍동의 큰 느티나무 아래에서 황제의 칙령에 따라 대규모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청나라 말기에 이르러 그 후손들은 허난성, 산둥성, 허베이성, 베이징, 산시성 등 여러 지역으로 널리 퍼졌다. 중씨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당나라의 저작인 「원화성전」에 나타난다.

[성씨의 유래] 이 성씨는 노(魯) 성씨에서 유래하였다. ‘원화성전’에 따르면, 노중의 후손들이 선조의 휘를 성으로 삼아 사용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중(仲)이라는 성씨가 발생하였다.

[성씨의 유래] 중씨의 주요 성씨 유래지는 남양군이다. 남양군은 전국시대 진나라 소양왕 35년에 설치되었으며, 오늘날의 허난성에서 웅아산 이남과 다훙산 이북에 해당하는 지역에 자리했다. 그 치소는 완현(현재의 허난성 난양시)에 두어졌다.

[문파 회관 명칭] 중씨의 주요 문파 회관은 범상회관이다. 범상회관: 하계가 부당하게 통치하던 시절, 그는 밤의 궁전으로 삼기 위해 연못을 파고 남녀가 자유롭게 어울리게 하였으며, 한 달 내내 조회를 열지 않았다. 중구는 이를 보고 눈물로 간언하였으나, 그의 말은 끝내 들리지 않았다. 이에 중구는 하계를 버리고 상나라의 탕에게 의탁하기 위해 상으로 망명하였다.

[가문 대련] 중씨 가문의 대표적 대련은 다음과 같다: “서간을 돌려주고 옥패를 회수하라”(중신사); “스무 살에 군역을 청하니”(중준). “가오미에서 명성이 울려 퍼지다”(중창); “장덕 남부 지역에서 덕행이 널리 알려지다”(중팡). “폐문한 문 앞에서 현령을 꾸짖고, 스무 살에 그 이름을 떨쳤다”(중준).

[주목할 만한 인물들] ‘중국 역대 성명 대사전’에는 중씨 성을 가진 인물이 일곱 명 기록되어 있으며, ‘중국 성명 대사전’에는 네 명이 수록되어 있다. 역사 속에서 중씨 성을 지닌 인물로는 한나라 시대의 진안 출신으로 언변이 뛰어난 중군, 당나라 시대의 현종과 동시대를 살았던 중우, 송나라 시대의 중신사, 그리고 명나라 시대의 구청 출신으로 예부의 하급 서기관이었던 중기공 등이 있다.

[인구] 제4차 전국 인구조사에 따르면 산시성에는 중씨 성을 가진 사람이 17명 있으며, 그중 린펀시에 2명이 거주한다.

[제단장] 종가의 조상 위패는 큰 느티나무 아래에 자리한 사당의 제8호 제단장에 봉안되어 있다.

키워드:

홍통 큰 회화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