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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이라는 성씨입니다.

2018-03-23


명나라 시대에, 평양부 홍통현과 조성현에서 이주해 온 후이씨 문중의 시조는 이들 지역 출신으로 기록되어 있다. 명나라 초기에는 황제의 칙령에 따라 이 문중은 홍통의 큰 느티나무 마을에 집중되었다가 이후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였다. 청나라 말기에 이르러서는 그 후손들이 허난성, 산둥성, 허베이성, 베이징, 산시성, 간쑤성, 안후이성, 장쑤성, 산시성 등지로 널리 퍼져 나갔다. 후이씨 성씨에 관한 최초의 문헌 기록은 명나라 시대의 「만성종보」에 나타나 있다. [유래] 제4차 전국인구조사 통계와 홍통의 큰 느티나무 조상사당의 족보 기록에 따르면, 후이씨 성은 허난성, 산둥성, 허베이성, 베이징, 산시성, 간쑤성, 안후이성, 장쑤성, 산시성 등지에 분포하며, 모두 큰 느티나무 이주민들의 후손들이다. 그러나 이 성씨의 정확한 기원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저명 인물] 역사 속 후이씨 성을 가진 인물 가운데는 명나라 시대의 후이자오가 있었다.

명나라 시대 홍퉁의 대회수나무에서 이주해 온 이씨 일족의 시조는 평양부, 홍퉁현 및 조성현 출신이었다. 명나라 초기에 조정의 칙령에 따라 이들 가문은 홍퉁의 대회수나무로 집결한 뒤 각지로 이주하였다. 청나라 말기에 이르러 그 후손들은 허난성, 산둥성, 허베이성, 베이징, 산시성, 간쑤성, 안후이성, 장쑤성, 산시성 등 여러 지역으로 널리 퍼졌다. 이씨 성씨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명나라 시대의 ‘만성종보’에 나타난다.

[성씨의 유래] 제4차 전국인구조사 통계와 홍둥 대회화나무에 있는 조상묘의 등록 기록에 따르면, ‘이’씨와 같은 성씨는 허난성, 산둥성, 허베이성, 베이징시, 산시성, 간쑤성, 안후이성, 장쑤성, 산시성 등지에서 확인되며, 이들은 대회화나무를 출발점으로 한 이주자들의 후손들로 보이나 그 정확한 기원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주요 인물] 후이 성을 가진 역사적 인물 가운데 명나라 시대에는 영락 연간의 거인으로서 어사대부 등을 지낸 후이자오와, 샹허현의 교관을 지낸 후이이춘이 있었다.

[인구] 제4차 전국 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산시성에는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3,149명이며, 그중 린펀시에 32명, 홍퉁현에 1명이 거주하고 있다.

[제단장] 후이씨 문중의 조상 위패는 큰 느티나무 아래에 자리한 사당의 제2제단장에 봉안되어 있다.

키워드:

홍통 큰 회화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