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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다이
2018-01-30
조상의 시조는 다이보였다. 명나라 시대에 다이씨 가문의 최초 조상들은 핑양부 홍퉁현과 자오청현에 호적을 올렸다. 명나라 초기에는 조정의 칙명에 따라 홍퉁의 큰 느티나무 아래로 모여들어 각지로 이주하였다. 청나라 말기에 이르러 그 후손들은 허난성, 산둥성, 허베이성, 베이징, 톈진, 산시성, 안후이성, 장쑤성, 산시성 등 여러 지역으로 널리 퍼졌다. 다이 성씨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당나라 때 편찬된 「원화성전」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성씨의 유래] 이 성씨는 고대 국가의 군주 후손들에서 유래한다. 「만성종족통보」에 따르면, 춘추시대에 대나라는 조양자에게 멸망하였고, 대나라 군주의 후손들이 옛 나라의 이름을 따서 ‘대’를 성으로 삼았다고 한다.
[성씨의 유래] 다이 성의 주요 본관은 대군이다. 대군은 진나라가 조나라를 멸망시킨 뒤, 옛 대나라의 영토를 대군으로 설치한 데서 유래한다. 진나라와 서한 시대에는 그 치소가 오늘날 허베이성 위현 남서부에 있었고, 북위 시대에 이르러서는 현재 산시성 다퉁시 북부의 평성으로 옮겨졌다.
[주요 인물] ‘중국 성명대사전’에는 대씨 성을 가진 인물이 두 건 기록되어 있으며, ‘중국역대성명대사전’에는 네 건이 수록되어 있다. 역사상 대씨 성을 지닌 인물로는 전국시대 조나라 출신의 대거, 한나라 시대에 살았던 대무, 그리고 송나라 시대 대주 출신으로 태자중서를 지내며 ‘주역지안’과 ‘노자불교잡설’ 등의 저술을 남긴 대원 등이 있다.
[인구] 제4차 전국 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산시성에는 다이 성을 가진 사람이 3,897명, 린펀시에는 628명, 홍퉁현에는 118명이 거주하고 있다.
[제단장] 대회화나무 아래에 자리한 사당의 제1호 제단장에는 성씨의 조상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키워드:
홍통 큰 회화나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