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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시
2018-01-08
시씨는 시문 가문에 그 연원을 두며, 시문보를 시조로 삼는다. 명나라 시대에 홍퉁 대회화수에서 이주한 시씨의 최초 이민자들은 핑양부, 홍퉁현, 자오청현 등지에 호적에 올랐다. 명 초기에는 홍퉁 대회화수에 집결하여 타 지역으로 이주할 것을 명받았다. 청나라 말기에 이르러 그 후손들은 허난성, 산둥성, 허베이성, 베이징, 톈진, 산시성, 안후이성, 장쑤성, 후베이성, 후난성, 산시성 등 여러 지역으로 널리 퍼졌다. 시 성씨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남송 시대의 『흥원』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성씨의 유래] 이 성씨는 서문보의 후손들에서 비롯되었다. ‘성원’에 따르면, 서문보의 후손 가운데 일부는 자신의 성을 간략히 하여 단순히 ‘서’로 불렀다. 서문보는 전국시대 위나라 문후 시대에 예현의 현령으로 재직하였다. 당시 예지역 사람들은 홍수로 인해 큰 고통을 겪었고, 지방의 권세 있는 관리들이 무당과 점술가들과 결탁하여 강신의 신부 맞이 의식을 빌미로 민중을 기만하던 상황이었다. 서문보는 예에 부임한 뒤 이러한 미신적 관습을 철폐하고 수리시설을 건설하여 열두 개의 수로를 파내어 장강의 물을 끌어와 논밭을 관개함으로써 토질을 개선하고 농업 생산을 크게 증진시켜, 지역 주민들의 깊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성씨의 유래] 서씨의 주된 성씨 유래는 위군이다. 위군은 한나라 고조 시대에 설치되었으며, 그 치소는 현재의 허베이성 린장 남서쪽에 위치한 예현에 있었다.
[주요 인물] 「중국역대인명종합사전」에는 시씨 성을 가진 인물이 21명 기록되어 있다. 이 성을 지닌 역사적 인물 가운데 송나라 시대에는 시한걸이 있었고, 소오현의 사법관으로 재직한 시대 또한 있었다. 원나라 시대에는 시나페이가 있었으며, 명나라 시대에는 동평 출신의 시명기가 있었고, 청나라 시대에는 시란과 시성이 있었다.
[인구] 제4차 전국 인구조사에 따르면, 산시성에는 시 성씨를 가진 사람이 204명이며, 린펀시에는 13명, 홍퉁현에는 1명이 거주하고 있다.
[제단장] 시씨 문중의 조상 위패는 큰 느티나무 아래에 자리한 사당의 제단장 1호에 봉안되어 있다.
키워드:
홍통 큰 회화나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