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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우라는 성씨

2021-05-31


춘유 성씨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동한 시대의 문헌인 「풍속통·성씨편」에 나타난다.
[성씨의 유래] 이 성씨는 가문의 성으로 사용된 나라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춘추시대에는 춘유라는 소국이 있었으며, 그 옛 영토는 오늘날 산둥성 안추현의 동북쪽에 위치해 있다. 이후 춘유는 제나라에 병합되었고, 그 지배자의 후손들은 본래의 국호인 ‘춘유’를 성으로 삼게 되었다.
[씨족의 기원] 춘유 씨족의 선조의 고향은 허내군이다. 허내군은 초한 교체기 때 설치되었으며, 오늘날의 허난성 내 황하 북안 일대에 대략 해당한다. 그 행정 중심지는 허난성 우즈현 남서쪽에 위치한 회현이었다.
[가문 현판 대련] 춘유씨의 대련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재치와 해학의 일화, 세월을 넘어 전해지니(춘유곤); 천하에 이름 높은 학자라 하니(춘유악).” “형제는 모두 수나라 말기의 충신이요(춘유난, 춘유랑); 강산을 지키며 변주목사로 재임하였도다(춘유난).” “대회수의 꿈속에서 공주와 혼인하였고(춘유분); 곡창에서는 덕스러운 딸을 낳아 기르는 행운을 누렸도다(춘유이).” “전략과 언변의 예술에 능하며, 간언으로 인해 한밤중에도 술잔을 들고 깨어 있곤 했으니(춘유곤); 의학의 대가로서 ‘평문’을 전하고, 그의 딸 티잉은 지조의 표상이었도다(춘유이).”
[유명 인물] ‘중국 성씨대사전’에는 춘우성의 사례가 여섯 건 기록되어 있으며, ‘중국역대인명대사전’에는 열네 건이 수록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이름난 춘우성 인물로는 전국시대에 제나라의 학자 춘우곤과 문신 춘우악이 있고, 한나라 시대에는 원성 출신으로 정릉후였던 춘우창이 있으며, 서한 초기에는 춘우의가 있었고, 당나라 시대에는 연출신 춘우랑이 있었다.
[제단장] 춘유씨의 조상 위패는 큰 느티나무 아래에 자리한 사당의 제10호 제단장에 봉안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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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통 큰 회화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