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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 성씨

2018-04-12


이 성씨는 고양씨와 강씨에 그 기원을 두며, 창수와 자원을 최초의 시조로 한다. 명나라 시대에는 홍통의 큰 느티나무에서 이주한 원씨 일족이 본래 평양부, 홍통현, 조성현 등지에 호적을 올렸다. 명나라 초기에 이들은 홍통의 큰 느티나무로 집합하여 타 지역으로 이주하도록 명을 받았다. 청나라 말기에 이르러 그 후손들은 허난, 산둥, 허베이, 산시, 간쑤, 안후이, 산시 등지로 널리 퍼졌다. ‘유’ 성씨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북송 시대의 『광운』에 나타난다. [유래] 이 성씨의 주요 유래는 두 가지로 나뉜다. ① 강씨에서 비롯되었다. 『흥사고략』에 따르면 춘추시대 제나라의 권력가문에 자원이라는 인물이 있었고, 그의 후손들이 ‘유’ 성을 취하게 되었다. ② 『고금흥사서변정』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고양씨의 여덟 명의 재능 있는 아들 가운데 한 사람의 이름이 창수였으며, 사후 ‘원’이라는 시호를 받았고, 이후 그의 후손들이 이 시호를 성으로 삼게 되었다. [저명인물]

원씨는 고양과 강의 계통에 그 연원을 두며, 창수와 자원을 최초의 시조로 삼는다. 명나라 시대에, 평양부 홍동현과 조성현에 그 선대의 근원을 둔 원씨 가문은 명 초기의 황제 칙명에 따라 홍동의 대회수지에서 다른 지역으로 대규모 이주를 당한 집안 가운데 하나였다. 청나라 말기에 이르러서는 그 후손들이 허난, 산둥, 허베이, 산시, 간쑤, 안후이, 산시 등 여러 지방으로 널리 퍼져 있었다. 원 성씨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북송 시대의 『광운』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성씨의 유래] 이 성씨에는 크게 두 가지 유래가 있다. ① 강씨에서 비롯된 것으로, ‘승사고열’에 따르면 춘추시대 제나라의 권력 가문에 자원이라는 인물이 있었고, 그의 후손들이 원(袁)을 성으로 삼았다고 한다. ② ‘고금성씨수변정’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고양의 여덟 명의 재능 있는 아들 가운데 한 사람의 이름이 창서였으며, 사후 ‘원’이라는 시호를 받았고, 이후 그 시호에서 성씨가 유래했다고 한다. [저명한 인물] 춘추시대 제나라의 대신 원구, 송나라 소흥 연간에 순주사마를 지낸 원봉, 그리고 명나라 때 창산현 부현령을 역임한 원성이 원 성씨를 가진 역사적 인물들이다.

[인구] 제4차 전국 인구조사에 따르면, 산시성에는 원씨 성을 가진 사람이 1명 있습니다.

[제단장] 원씨 가문의 조상 위패는 큰 느티나무 아래에 자리한 사당의 제3제단장에 봉안되어 있다.

키워드:

홍통 큰 회화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