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한Hongtong Dahuaishu

허베이성, 허난성, 산둥성의 광활한 지역에서는 널리 “…라고 믿어지고 있다. 사람들을 삼켜 버린 ‘붉은 벌레’에 관한 이야기는 명나라 시대, 이 지역에서 이들 생물이 홍퉁의 대회나무에서 옮겨온 주민들까지 모두 잡아먹었다는 내용을 전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한편으로는 ‘연왕이 비석을 쓸어버리다’라는 설화와도 연결되며, 그로 인해 이 일대는 인구가 드문드문 남게 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비석은 바로 난징의 공덕비로, 본질적으로 명나라 황실의 선조들을 기리는 가계비이다. 명나라가 건국된 뒤, 주원장은 왕조의 영속적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 먼저 장남 주표를 세자로 지명하고 후계자로 삼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주표는 아버지보다 일찍 세상을 떠났다. 이에 따라 주원장은 주표의 아들인 주윤문을 황실의 증손으로 책봉하였다. 주원장이 서거한 뒤, 주윤문은 왕위에 오르고 ‘건문’이라는 연호를 사용하여 역사상의 건문제가 되었다.
연왕 주디는 홍무제 주원장의 네 번째 아들이었다. 그는 용감하고 지략이 뛰어나, 명나라를 건국하는 전쟁에서 아버지와 함께 싸워 수차례에 걸쳐 탁월한 군공을 세웠다. 주원장이 주표를 태자로 책봉했을 때부터 주디는 이미 내심 불만을 품고 있었고, 조카가 왕위에 오르자 그 원한은 더욱 깊어졌다. 더구나 제후들의 세력이 지나치게 커져 중앙정부의 통제가 어려워진 것을 보고, 건문제는 재상 치타이와 황자성의 건의를 받아들여 제후들의 봉지를 축소하기로 결단했다. 이는 연왕에게 명분과 기회를 제공했고, 그는 이를 결코 놓칠 생각이 없었다. 그는 홍무제의 선조 유언을 인용하며 조정에 간신들이 침투했다고 선언하고, 건문제를 대신해 ‘난리를 평정하겠다’고 맹세했다. 북경에서 반란을 일으킨 그는 병력을 이끌고 남경으로 진격했다. 먼저 하북을 공략한 뒤 하남으로 진군하고, 이어 산동까지 점령한 다음 마침내 남경을 포위했다. 그 과정에서 건문제를 지지하는 황실 군대와 지역 민중의 격렬한 저항에 맞닥뜨려 수년에 걸친 장기전을 치렀다. 결국 그는 남경을 함락시켰다. 오랜 전쟁으로 북방 지역은 황폐해졌고, 수천 리에 걸친 광활한 땅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삭막함이 드리워졌다. 주디의 군사들이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다녔기 때문에, 백성들은 그들을 ‘붉은 벌레’라 부르게 되었다. ‘붉은 벌레’라는 말에는 역병이라는 뜻이 담겨 있어, 이 생물들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속설이 널리 퍼졌다.
연왕이 남경을 함락한 뒤, 건문제는 자진분신으로 생을 마감했고, 연왕 자신은 황위에 올라 영락제가 되었다. 즉위 후 그는 정통 유교 이념에 철저히 충실한 대신들의 강력한 반대에 직면하자, 잔인한 수단에까지 의지했다. 그는 방효유의 일족을 모두 처형하고, 정치적 반대파뿐 아니라 그들의 동향 사람들까지 집단적으로 멸족시키는 ‘주안처조’ 정책을 시행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도를 북경으로 옮긴 뒤에는 홍둥의 큰 느티나무 주변 지역에서 산둥, 허베이, 허난, 안후이, 저장 등 여러 지방으로 사람들을 이주시켜, 황무지를 개간하고 농업 생산을 증진하도록 명령하였다.